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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멋과 맛

현판으로 돌아보는 호서 기호학의 거목 김장생 선생의 위패를 모신 돈암서원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18.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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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연산에 위치한 '돈암서원'은 조선후기의 유학자인 김장생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학들이 창건한 서원입니다.

오늘은 논산의 돈암서원의 현판들로 돌아볼까요>>>>>>>>


논산시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원이라 함은 조선시대에 지방의 고등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향토교육기관입니다.

서원 내에 여러 부속건물 들이 있는데 오늘은 건물의 현판을 돌아보는 이야기 입니다.

돈암서원비문에 의하면 방, 대청, 툇마루, 행랑을 갖춘 응도당이 있었고, 응도당의 왼쪽에 거경제 오른쪽에 정의재가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그 건물이 어느 것인지를 분간하기도 어렵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현재 복원된 모습으로 서원은 잘 정리되어 있네요.




산앙루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도덕을 상징하여 지은 누각 입니다. 돈암서원을 들어서는 첫 관문이기도 합니다.

돈암서원은 조선시대인 1634년 (인조 12년)에 현재의 위치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인 숲말에 세워졌었습니다. 그러나 서원의 위치가 낮은 지역으로 비가 많이 와 홍수때에는 물이 뜰까지 넘쳐들어 와, 1880년 - 고종 17년 - 지금 위치한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번지로 옮겨지어졌습니다. 




돈암서원은 1660년 현종 원년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액서원이란 중앙정부로부터 토지 및 노비등을 지원받는 등 서원운영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서원이랍니다.



산앙루 누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입덕문을 만납니다. 돈암서원을 들어 서는 유생들은 덕목이지요.



입덕문 현판 

돈암서원은 사계선생께서 세상을 떠난후 제자들이 선생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하여 사우를 건립한뒤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내려오다가 사당앞에 강당을 세우고 선생의 학문을 배우며 서로 뜻을 이어 내려 왔다합니다.



돈암서원이 처음 자리한 곳에 돈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어 서원의 이름을 돈암이라 하였다 합니다.

응도당 강당에 있는 돈암서원 현판



입덕문은 소슬 3문으로 꾸며 졌으며 입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양성당와 좌측에 응도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응도당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곳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누 마루식 건물이랍니다.



정회당

정회 (靜會)는 유생의 수행 방법 중 하나로 고요하게 몸소 실천하며 수행한다는 뜻이랍니다.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공께서 강학을 하던 건물이랍니다.

1954년 대둔산자락의 고운사터에서 옮겨 왔습니다.



장판각

판(板)을 간직하여 보관한다는 뜻으로 김장생 문집인 '사계전서'와 부친인 김계휘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황강실기' 등 여러 자료를 보관하는 곳이랍니다.



돈암서원의 배롱나무



돈안서원 사우

사우는 양성당 후면에 위치해 있으며 서원의 유림들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에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우의 건축을 보면 전면은 1칸통을 개방하여 전퇴를 두었고,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퇴는 전돌 이며, 전면 기둥사이에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회벽으로 건축하였습니다.


 

돈암서원 숭례사 사우

숭례사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등의 위패를 모셨으며,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향토서원이다.


양성당은 사계 선생이 건립한 작은 강당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폐허가 되어 없어지고 강당 이름만 전해 내령 온 것을 이름없는 빈강당에 액자만 걸려있었으며 19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건축되었습니다.


 

정의

정의란 자세를 의의하는 뜻으로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강론하던 곳이랍니다.



거경재

거경(居敬)은 성리학 수행방법의 하나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를  가짐을 말하며, 역시 유생들이 학습하던 공간입니다.


조선시대 서원의 설립 목적은 선현봉사와 자제교육에 목적이 있는데 후세에는 유림들의 당쟁 등 세력확장의 중심지로 되어가며 서원폐해가 심각해지면서 대원군때에는 전국에 47개 서원만을 남기고 600여개소의 서원을 모두 철폐하였으며 이때에 논산에 있던 서원중 철폐되지 않고 남아있던 서원은 연산의 돈암서원과 광석의 노강서원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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