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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멋과 맛

남도 여행 -- 다산초당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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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에는 남도여행이 참 좋아요.

오늘은 남도 여행 강진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기암괴석의 월출산을 등에 지고

남해바다 강진만을 앞에 둔 강진군 

남도 여행 일번지입니다.

 

강진 -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선생이 유배지로 이곳에는

다산초당이 있습니다.

휙 하니 다녀온 다산초당이야기를 올려봅니다.

 

귤송당입니다.

다산이 47세이던 1808년 봄에 강진 보은산 고성사에서

윤단이 귤동의 윤 씨 산정(다산초당)으로 다산을 모시고 왔답니다.

 

 

삼남대로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이 조성되어 있고 

다산초당에서 고개 넘어가면 동백꽃 아름다운 백련사가 있습니다.

 

 

다산초당 오르는 길은 정비 중에 있습니다.

흙길을 따라 올라가면 초당을 만납니다.

 

 

정다산 유적은 사적 제107호입니다.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어 18년간 머문

곳이며 그 기간 중 가장 오랜 11년간 머물며 

후진 양성과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 바로 이곳 다산초당이랍니다.

 

 

다산초당 제1경인 정석글의 바위입니다.

다산초당 뒤에 있으며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집니다.

 

 

다산 초당 앞에 연지 터와 채마밭이 발견되어 발굴작업 중에 있습니다.

 

 

초당옆에 있는 작은 건물에 쉼의 시간을 갖고..

 

 

10년간 정약용은 후진양성과 저술 활동을 몰두했고

18명의 제자를 양성한 다산초당입니다.

 

다산초당에서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하였고

초당을 가꾸는데도 정성을 다하여 채마밭을 일구고

연못을 넓히고 집도 새로 단장하기도 하였답니다.

 

 

다산의 영정이 모셔진 다산초당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해남 윤 씨 집안의 산정이었던 곳이

다산 정약용의 손에 의해서 다산초당으로 거듭났고,

정약용은 스스로 다산초부라 칭하게 되었답니다.

 

 

다산의 제자들은 스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자료 수집, 정리, 정서와 편집 등의 작업에 참여하였답니다.

 

 

다산은 정열적을 각종 저작을 집필하고 동시에 제자들을

능력별, 수준별로 지도하고 독려하였다 합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남도 여행객이 다산 초당의 건물에서 쉬고 있어요.

동백을 보러 백련사에 왔다가 다산초당으로 넘어왔답니다.

 

 

다산은 한가할 때면 계곡과 연못을 거닐고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시를 짓기도 하였다지요.

다산초당 백련사 주위에는 야생차밭이 있기도 합니다.

 

 

남도 강진이 다산초당은 유배객의 쓸쓸한 거처가 아닌

선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이자 조선 시대 학술사에서

가장 활기찬 학문의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산초당의 모습을 돌아본 남도 강진여행길이었습니다.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 작은 시골 상점 앞에는 

붉은 플라스틱 용기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관련 책이 

이렇게 자리한 모습을 보며 발길을 돌리며

남도 강진여행을 마무리한 추억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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