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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멋과 맛

강진여행 -- 정약용의 다산초당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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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하루는 먼 길 강진으로 나들이를 나섭니다.

아침에 출발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다녀오면 

오후 9시가 되는 길이지요..

오늘은 강진 나들이에 담아 온 정약용선생의 흔적을 올립니다.

 

강진여행 -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정약용 선생이 

머물며 많은 책을 저술한 산실입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아름다운 동백숲길로 이어졌답니다.

백련사를 돌아보고 차량으로 이동해 다산초당 입구에서 올라갑니다.

 

 

 

 

 

 

 

 

다산초당 가는 길 --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탐진강 푸른 물과 월출산 깊은 골짜기마다

다산의 실학정신이 빛나는 고장입니다.

강진에느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이 남도 유배길'이 65.7km 조성되어 있습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공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어 18년간 머문 곳입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을 오르며 그 옛날 유배당한 실학자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조금씩 다가가는 다산초당 -- 다산초당은 정약용 선생이 11년간 머물며

후진 양성과 실학을 집대성한 성지입니다.

 

 

 

 

강진 정약용 유적 내 하부 연지를 확인하기 위해 문화재 조사를 시행한 모습입니다.

2020년 8월부터 12월까지 조사 결과 하부 연지 추정지 1개소,

채마밭 추정지 2개소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강진군에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옛 연지와 채마밭에 대한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 있답니다.

 

 

 

 

다산초당과 서암 - 초당은 다산이 제자를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입니다.

원래는 윤단의 산정이었으나 서로 교분을 나누면서 그에게 거처로 제공되었답니다.

1808년에 지어져 잡초 속에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다시 세웠답니다.

 

 

 

 

다산초당  -- 다산을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인 1801년

신유박해에 뒤이은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사의재, 고성사 보은산방 등을 거쳐 1808년 외가(해남 윤 씨)에서

마련해준 이곳으로 거쳐를 옮겼습니다.

 

 

 

 

초당 뒤에 돌에 새겨진 글 --정석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1경입니다.

자신의 성인 정丁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정석 돌 앞에서 바라본 초당의 모습입니다.

 

 

 

 

다산초당의 앞마당.

 

 

 

정약용은 1808년 봄, 해남 윤 씨 집안의 산정에 놀러 갔으며,

아늑하고 조용하며 경치가 아름다운 다산서옥은 이곳 다산 그 이름처럼

차나무로 가득했으며,

이에 다산은 시를 지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윤 씨 집안은

이를 흔쾌히 허락하였답니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제자 18명을 길러냈으며,

초당을 가꾸며 채마밭을 일구고 연못을 넓히고 석가산을 쌓고 집도 새로       

단장하여 윤 씨 집안의 산정은 다산초당으로 거듭나고,

정약용은 스스로 '다산초부 茶山樵夫 '라고 칭하게 되었답니다.

 

 

 

 

 

 

 

 

 

 

다산은 유배가 풀리던 1818년까지 이곳에 머물며

제자를 가르치고 글 읽기와 집필에 몰두하였습니다.

여기서 '목민심서 牧民心書' '경세유표 經世遺表' '흠흠신선 欽欽新書'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다산은 1762년부터 1836년간 살다가 조선시대 유학자 이자 실학자입니다.

1801년 천주교 교난 때 경상도 포항 부근으로 장기 유배를,

곧이어 발생한 ' 황사영백서사건'의 여파로 문초를 받고

다시 강진으로 유배생활을 하며 중앙의 정계와 결별을 하고

강진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킵니다.

 

 

 

 

 

 

다산초당 앞 연못..

연지석가산입니다 -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으로

원래 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고 바닷가의 돌을 주워 조그마한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 하였으며 연못에는 잉어를 키웠으며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에도 이곳에 있는 제자들에게 잉어의 안부를 묻는 등 귀하게 여겼답니다.

 

 

 

 

 

다산초당에 복원된 건물들입니다.

다산동암은 송풍루라고도 불렸으며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입니다. 

"다산동암 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현판입니다. 

 

 

 

 

 

다산동암 마루에는 강진 나들이와 백련사에서 동백숲을 보며 

다산초당으로 넘어온 중년의 친구 여성 둘이 잠시 휴식을 하고 있네요.

 

 

 

 

 

 

이렇게 다산초당을 돌아보며 발길을 출발지로 돌립니다.

 

 

 

 

 

 

다산초당 산길이 시작되는 초입에 상가에 준비된

다신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다산초당을 떠나며 그 옛날 유배생활에도 학자의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사회를 위해 후학을 양성하며 수많은 책을 저술한 

학자의 모습을 천천히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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