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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전북에 스민 태조이성계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역사여행 이야기입니다.
여행길은 전주에서 임실 그리고 남원과 진안으로 이어지며 가 지역에
남아있는 태조 이성계의 숨결을 찾아 봅니다.
전주에는 32개의 태조 이성계의 역사 자원이 있답니다.
오늘은 경기전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전라북도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 경기전을 찾아서
전라북도에서 왜 '이성계'의 숨결을 찾는가?
전주와 전북은 조선의 본향으로 불렸답니다. 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전주이씨이며, 그의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전주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 관련 역사유적의 77%가 전북지역에 남아 있답니다.
그 중 한곳인 전주 경기전을 찾아간 이야기를전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후 전주는 대한민국 관광의 일번지로 발전하였다 해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 중심에는 한옥마을이 있고 한옥마을의 중심에는 경기전이 있답니다.
평일 오후, 한산한 경기전 모습입니다.
경기전은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던 비가 경기전에 도착하니 멈추었습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
경기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서 만나는 기둥 한 개가 있습니다.
경기전 입구에는 하마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인 하마비가 경기전 앞에는 암수 두 마리의 돌 사자상위에
비석이 서 있으며, 흰대리석에 두 행(行) 열 자(子)로 글이 써 있습니다.
그 내용은
" 이곳에 이르렀거든 모두 말에서 내리라. 잡인들은 출입할 수 없다' 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대리석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은 해태처럼 보이지만 사자상으로
입을 벌린 것은 숫놈, 입을 벌린 것은 암놈으로 암수 사자 한 쌍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경기전을 지키는 것이라 합니다.
말은 안타고 왔으니 이제 걸어서 들어갑니다. 이성계 역사 흔적을 탐방하는 방문객이니
잡상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경기전 안으로 고고 씽씽입니다.
경기전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문화해설사가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역사이야기를 들려주며 같이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안내시간이 오전과 오후 세 번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전관광안내소 전화번호는 063 281 2981 입니다.
경기전에서는 년중 계획에 의해 다양한 행사와 체험이 진행됩니다.
요즘은 코XX사태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일들이 뒤죽박죽 되었는데
그런 어려움 속에도 우리문화에 관한 행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봅니다.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은 궁궐'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태조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고 왕권의 권위를 만방에 알리고자 세워졌답니다.
경기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높다란 홍살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살문은 경건함을 상징하지요.
잘 관리된 경기전은 한옥마을의 중심점이자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꼭 들러야 하는 명승이 되었답니다.
전주를 방문한 연인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경기전에서 가을이 오는 여유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공원같은 경기전은 연인 데이트 장소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네요.
경기전에 나라를 처음 세운 임금의 초상화를 모셨답니다.
1410년 태종10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보관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기전이 창건되었으며,
태조어진은 국보 제3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진이라 함은 왕의 초상화를 말합니다.
경기전 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좌우측에는 아람드리 나무가 자리하고 있네요.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1872년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초상화의 대가인 운계 조중묵이 모사한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 어진이라합니다.
경기전 입구를 지나 경전으로 들어갑니다.
경기전의 정전모습입니다. 원래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시는 곳은 태조진전인데 조선 팔도 에 다섯곳을 세웠답니다.
왕실의 본향인 전주와 태조가 태어난 영흥, 태조의 옛집이자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고구려수도였던 평양, 마지막으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이렇게 다섯 곳에 태조진전을 설치했다 합니다.
정전을 들어갈 때는 오른쪽 길로 들어가고 태조의 어진을 만난 후 나올 때는 반대쪽 길로 나옵니다.
중앙의 길은 신들이 다니는 길이라 합니다.
당시 어진을 모시는 진전을 세우는 것은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국가의 시조 始 祖를 잊지않고
경모하게 하며, 옛 왕조의 도읍에 진전을 건립하여 그곳 백성들의 소외감을 지지로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경기전 정전에 있는 태조이성계 어진입니다. 이 어진은 모사품입니다.
태조의 어진 보관은 조선의 수난의 역사처럼 순탄치는 않았답니다.
정전의 어진보관소에는 옛 왕의 행차나 행사시에 사용하던 물품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진을 보관하는 장소는 사방이 방처럼 봉해있고 정면만 개방된 모습입니다.
천장과 벽들은 화려하게 그림과 문양으로 도색된 모습입니다.
1597년, 이 때는 선조 30년으로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침략한 왜군에 의해
경기전이 처참하게 불에 타고 다행이 어진을 사전에 옮길 수 있었답니다.
경기전이 화마에 소실되자 영정은 정읍 - 아산 - 강화 - 묘향산 등지로 떠돌다가,
1614년, 광해군 6년 가을에 관찰사 이경진이 경기전을 다시 짓고 어진을 모셨답니다.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은 일본국, 왜국과 악연이 계속되었답니다.
경기전의 결정적인 훼손은 일제강점기 때로 경기전의 서쪽 반을 들어내고 그곳에 일본인 전용
소학교를 세웠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의해 수난의 되풀이가 되었지요.
해방 후 중앙초등학교를 인근으로 옮기고 경기전 복원 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지금은 한옥마을의 중심으로 자라잡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와 역사의 아픔도 알아보고,
아름답고 고귀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추억의 한 장을 만드는 경기전이랍니다.
경기전 내에는 사고인 실록각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전주사고, 문서고입니다.
왜란당시 사고에 보관중인 조선왕조 실록을 보호하기 위해
보관중이던 그 많은 실록을 정읍의 산속 동굴로 피난 시키기도 하였답니다.
경기전의 정전 뒤로 돌아가면 조경묘를 만납니다.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과 시조비 경주 김씨의 위패를 봉안한 곳입니다.
이곳은 1973년 지방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으며
조경묘는 조선 왕조의 시조를 모신 장소로 규모는 작지만 홍살문에 내삼문이 있으며
내부에는 중앙에 신이 오가는 신도 神 道와 함께 향로가 놓여있는
왕실의 법도를 따라 조성되었답니다.
경기전에 들어서서 태조 이성계의 숨결을 찾아 경기전 경전과 - 실록각 그리고 조경묘를
편안한 걸음으로 돌아 본 하루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정리하고 다음으로 조선왕의 어진이 모셔진 어진각 이야기를
기약합니다.
경기전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건립시기 1410년
“상기 포스팅은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을 알리기 위하여 전라북도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 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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