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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멋과 맛

서산여행 -- 해미읍성 두번째 이야기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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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해안 방어의 중요한 지역인 해미의 해미읍성은

둘레에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심어 탱자성이라고

불렀답니다.

 

서산 여행 - 해미읍성 두 번째 이야기 

 

읍성이라 함은 지방의 관청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쌓은 성으로 읍邑이라는 말은 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의미합니다.

읍성은 평시에는 행정중심지가 되고 비상시에는 방어기지가 됩니다.

 

 

 

해미읍성 남문에서 동헌으로 가는 길에는 조선시대 무기와 병장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군사용 장비는 어떤 것이 있는지 볼까요?

 

 

 

 

 

현대 무기 같이 생긴 무기는 불랑기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지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이 가져와 전투에 사용했다는 해설이 있습니다.

 

 

 

 

 

이 무기는 별대완구라고 합니다. 완구는 음식 그릇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개발된 것으로 보인답니다.

 

 

 

 

화포는 조선시대 주력 화기로 많은 전투에서 사용되었답니다.

 

 

 

 

 

강력한 무기인 천자총통입니다.

 

 

 

 

신기전기화차

 

 

 

 

 

도깨비 문양의 방패를 장착한 검차입니다.

수레의 전면에 설치된 방패에 검을 꽂아 만들었으며 고려시대부터 사용하였답니다.

수레 맨 앞에 날카로운 칼이나 창을 꽂아 공격하였으며,

귀면문을 그려 넣어 적의 말을 놀라게 하는 효과도 있었답니다.

 

 

 

 

돌이나 불덩이를 멀리 투척하는 무기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해미읍성은 관광객이나 서산시민들이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놓아 산책을 하다가 시원한 그늘에서 쉴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개인용 무기인 병장기가 전시된 모습입니다.

 

 

 

 

창과 활 그리고 다양한 검이 전시되어 있네요.

 

 

 

 

 

 

동헌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남문입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해미읍성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읍성 내부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해미읍성에는 옥사가 있습니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를 토대로 복원된 모습이랍니다.

 

 

 

 

옥사를 관리하는 군졸입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 투옥하였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전래는 조선 후기 양반 지식층 주도로

서학이라는 학문연구를 통해 수용되고 전파되었습니다.

 

 

 

 

 

천주교는 학문연구에서 이후 종교화 되면서

기존 전통문화 가치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고

박해가 시작되었답니다. 

 

 

옥사 모습입니다.

해미읍성 내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손발과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던 회화나무가 있으며 

서문 밖에는 신자들을 참혹하게 처형했던 터가 남아 있습니다.

 

 

 

 

 

해미읍성 동헌의 모습입니다.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는 중심 건물로

간찰사, 수령들의 정청으로 지방의 일반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실시되었습니다.

동헌, 내아, 객사 들이 관청의 시설물입니다.

 

 

 

 

 

관청 건물 앞에 아주 오래된 나무 한그루 - 회화나무입니다. 천주교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나무가 여름의 푸르름으로 우뚝 자리하고 있네요.

 

해미읍성에서는 전통문화공연, 민속시연, 민속놀이, 복식체험 등 체험과

농산물직거래장터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크고 작은 돌들과 아름다운 누각 

이곳 서산해미읍성의 조선시대 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은 서산여행 해미읍성 이야기를 두 번째로 전하며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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