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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멋과 맛

군산에서 만나는 우리의 아픈 역사의 흔적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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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내항부근에는 일제 강점기시대 아픈 역사의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있었고 그 건물은 현재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픔을 전시해 놓아

찾아 오는 이들에게 그들의 만행을 알리고 있답니다.

 

군산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이야기

 

구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제강점기 수탈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일본인들을 위한 많은 정책을 지원하였답니다.

 

군산근대건축관 -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지점장실에 전시된 일제의 만행사실을 돌아봅니다.

 

 

지점장시로 사용된 사무실에는 조선은행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  是 日 也 放 聲 大 哭 이란 이 날에 목놓아 울다라는 뜻입니다.

대한제국의 멸망입니다.

 

 

"아 원통하다! 아 분하다! 2천만 노예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개국 이래 4천 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았는가?

분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 황성신문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중 일부 - 

 

세계정세에 적응하지 못한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 보존해 주겠다는 일제의 속임수에 넘어가 

끝내 나라를 빼았겼습니다.

여기에는 일진회와 을사오적 등 친일파들이 민족을 팔아먹은 역사가 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 입니다.

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기고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한 경술년 입니다.

 

 

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여야 합니다.

일제는 식민통치 방식을 시대에 따라 일반적으로 탄압 - 민족말살 - 우민화  - 경제적 수탈이라는

원칙을 유지하였답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은 맞서 싸웠습니다. 

비폭력 저항운동인 3.1만세운동부터 상해 임시정부 수립, 무장투쟁 항일운동까지 처절한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간악한 일제는 이런 기념엽서까지 발행하였답니다.

지금도 사죄는 커녕 반성도 하지 않는 그들입니다.

 

 

 

전라북도 옥구군의 3.1만세운동 관련 판결문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네요 

 

 

당시의 독립선언서 복사본 모습입니다.

 

 

 

천도교인 김홍렬 열사의 피 묻은 옷 입니다.

전북 옥구 사람으로 3.1만세운동 때 중앙 연락요원으로 활약하였고

귀향하여 옥구군 일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고 합니다.

 

 

 

 

일제의 간악한 정책인 조선어 사용금지와 창씨개명등을 통하여

이른반 내선일체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조선사람을 일본인화하여

동원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답니다.

 

 

 

우리의 식기인 놋그릇에 숟가락 마저 빼앗아가 전쟁물자로 사용하고 사기그릇을  주기도 했으며,

이 그릇도 없는 집에서는 조개껍질로 밥을 먹기도 했다고합니다.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양곡을 공출하는 명령서 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 교재를 사용해 국민학교 부터 교육을 하였으며,

일본군 앞에 총알 받이로 내몰기 위해 일본말을 가르치고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한 일본제국주의 만행입니다.

 

 

 

아동용 황국신민서사 -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조선의 어린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한가지 방법인듯 합니다.

 

 

전쟁물자 수탈을 위한 조직체로 만든 애국반 이야기입니다.

필승저축표는 애국반 반장에게 저축했다는 확인도장을 받아야 했답니다.

일제는 전쟁막바지인 1945년 애국반과 경방단 등 조직체에 한국인을 묶어두고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등 주요 물자를 통제하고 배급제로 하였으며,

놋그릇에 소나무뿌리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징발하여

군국주의의 마지막 제물로 삼았답니다.

 

 

 

우리민족 700만 여명의 청춘남녀가 전쟁터에 동원되어 영혼과 육체를 빼앗긴 아픔입니다.

일제는 1943년에 의무병역제인 징병제를 실시하여 적령기에 이른 청년을 전선으로 내 몰았으며,

1944년에는 학병제를 통해 대학생들도 강제 소집하고, 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포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미혼여성을 일본과 국내의 군수공장에 강제 취역시키거나 위안부로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어린이가 군인복장에 총검을 들고 있는 그림으로 징병보험 홍보 전단지를 만드리고 하고.

공출 할당 통고서도 보입니다.

 

 

 

전쟁의 결과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과 위안부 자료사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그리고

패망한 일본 외무대신이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자료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구조선은행 군산지점 응접실에는 조선은행과 군산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머물고 있습니다.

 

 

일제가 저항운동하는 애국지사를 범법자로 관리한 파일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군산의 삶에 대한 여러 자료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는 군인출신으로 부임하자마자 한반도에 공포분위기를 연추하며

헌병경찰제도, 조선태형령 등을 실시하여 우리 민족을 노예로 취급하고 탄압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19년 3월 1일 전국적인 평화적 항쟁인 3.1 만세운동을

전개하며 우리민족의 독립의지를 알렸으며,

이에 강압적인 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하여 민족운동을 분열시키고자 하였으나,

우리 민족은 독립운동을 실력양성과 무력투쟁 방법으로 체계화하여 일제에 대항하였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

 

군산 여행길에 만났던 역사의 아픈 기록 현장이었습니다.

#군산나들이 #경숙국치 #일제만행 #군산의저항운동 #군산근대건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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