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도 멋과 맛

보배로운 섬 진도여행 --- 고요한 정원과 아름다운 작품 운림산방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0. 10. 14.
728x90

남도의 여행이야기...오늘은 보배로운섬 진도 여행입니다.

진도에서 하룻밤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찾아간 곳은 진도여행에 놓치면 서운한 곳 바로

운림산방입니다.

 

보배로운 섬 진도의 운림산방

 

진도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에 그림을 그렸던 화실이 있는 곳으로

첨찰산자락에 위치해 있답니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운림산방 입구에서 산방의 배치도를 봅니다.

주요시설로 운림지, 소치화실, 소치고택, 소치영정실, 소치기념관 등 여러 시설이 있습니다.

 

 

운림산방은 1982년 소치선생의 손자인 남농 허건선생에 의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며

세상에 알려졌답니다.

저 안쪽으로 소치화실이 보입니다. 연못인 운림지를 보고 있고 그 뒤로 소치선생의 생가가 있답니다.

 

관광객들이 찾아 온 조용한 운림산방입니다.

남농화의 대가인 소치선생은 본관은 양천, 자는 마힐, 호는 소치이며 초명은 허유입니다.

20대에 해남 대둔사(현 대흥사)의 초의선사에게 학문을 익히고 추사 김정희 문하에서 서와를 배워

일세를 풍미하는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답니다.

 

 

진도 운림산방의 연못과 소치선생의 화실모습입니다.

선생의 시, 서, 화에 뛰어난 솜씨는 삼절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강한 느낌을 주는 갈필(마른 붓질) 산수가 주를 이루지만 노송, 노매, 모란, 괴석 등 문인화 또한 일품이라합니다.

 

 

소치 선생은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갈아 왕을 상징하는 화중지왕이라는 모란을 그려 바쳤고,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할 정도로 당대의 최고 화가로 추앙받았습니다.

연못에서 바라본 입구의 모습입니다.

 

 

보배섬 진도의 운림산방

운림산방 연못 운림지에 연잎이 가득입니다. 가운데 작은 섬에는 나무하나 고고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치선생의 대표작은 운림산방을 그린 선면산수도와 스승 김정희의 초상, 묵모란, 파초등이 있답니다.

 

연지에서 잠시 쉬었다가 소치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소치기념관의 전시된 작품들

보배섬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의 화맥이 200여 년 동안 5대에 걸쳐 9인의 화가를 배출하였고

선생의 화혼은 후손들을 통하여 지금도 찬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미술관"이랍니다.

 

 

 

소치 선생의 5대에 걸친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의 모습을 돌아보며 감상을 합니다.

양천허씨 12대손으로 진도읍 쌍정리에서 출생한 소치선생은 스승인 추사선생이 내려주었으며,

추사김정희 선생으로 부터 書와 畵를 전수 받았습니다.

 

소치기념관에서 선생의 일대기에 대한 글을 만납니다.

지성으로 피워낸 묵향.....기념관 안에는 은은한 묵향이 가득하네요.

 

 

추사 선생은 소치의 詩, 畵, 書를 평하여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다"고 극찬하였답니다.

1849년에 헌종대왕과 독대하여 그림을 그렸고 당대의 명사이던 석파 이하응, 민영익, 신관호 등과 교류하며

그 명망이 높았다 하네요.

 

 

소치선생가문의 남농 허건 화가에 대한 이력도 있습니다. " 갈필산수로 피워낸 신남화"라는 제목입니다.

1857년 선생은 보배섬으로 귀향하여 운림산방을 세우고 선생의 나이 86세 때인 189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치 특유의 문기가 드높은 불후의 작품들을 남겼답니다.

 

 

운림산방의 이어짐은

1대 소치 허련 - 2대 미산 허형 - 3대 남농 허건 - 4대 임인 허림 - 5대 임전 허문 이렇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소치 기념관에는 이 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소치 선생은 귀향하여 진도의 첨찰산 자락에 화실을 지어 '소허암'또는 '운림각'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의 운림산방입니다. 선생은 이곳에서 꿈에 어리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소치실록"이라는

자서전을 집필하였답니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선생이 1844년 제주도귀양살이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준 것임을 알리고 있답니다.

세한도는 구한말 일제의 추사 연구가인 후지즈카 치카시에게 넘어갔으나

1944년에 진도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노력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답니다.

이렇게 세한도를 찾아온지 3달 후에 후지즈카의 서재가 폭격을 맞아 모든 소장품이 전소되었으나,

세한도는 극적으로 돌아와 우리나라의 국보가 되었답니다.

 

보배의 섬 진도의 명소이며 남농화의 대가인 소치선생과 그 가문의 작품들의 묵향 가득한 소치기념관을

돌아보며 즐긴 남도의 멋 이었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