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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멋과 맛

강릉여행 -- 오죽헌 신사임당 그리고 율곡이이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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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강원도 여행의 마무리는 강릉의 오죽헌에서....

주문진 항에서 내려와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에

옛 추억을 찾아 오죽헌으로 갑니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가장 편한 길로 갑니다.

강릉의 커피거리로 가려고 했던 계획을

오죽헌으로 돌렸습니다.


강릉 오죽헌


오죽헌에는 강릉시립박물관이 같이 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휴관이어서 오죽헌만 돌아봅니다.



10년전 아내와 둘이 왔었던 오죽헌을

역시 아내와 둘이 돌아봅니다.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입니다.

현재 오죽헌이 있는 지역 일대를 오죽헌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오죽헌 주거 건축에서 드물게 이익공식을 취하고 있는 건물로

오죽헌 몽룡실에서 율곡 선생이 출생하였답니다.

오죽헌 입구에 학자 율곡이이 선생의 커다란 동상이 서 있습니다.


강릉 오죽헌은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민족의 스승인 율곡이이 선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죽헌 정문 기둥에

선비의 기개가 담긴 명판이 굳건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이이 선생은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이 되었답니다.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5만원권에는 신사임당의 초상화와 그의 작품인 포도 그림이 도안으로 사용되었네요.

신사임당은 율곡이이 선생의 어머니로

시, 그림, 글씨, 자수에 뛰어났으며 예술가로 묵포도도, 산수도, 초충도와 초서 등

작품과 '사친' 등 한시도 남겼답니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아들보다 10배나 모델료가 비싸다고....



5천원권의 율곡이이 초상화와 배경으로 선생의 탄생건물인 오죽헌과

오죽이 배경으로 도안되었습니다.


 

신사임당 관련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의 손도장도 기념물로 제작 전시되고 있습니다.


오죽헌 입구에는 큰 율곡선생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 성리학에서 이황선생과 함께 쌍벽을 이룬 철학자, 사상가이자 정치가 입니다.

현재의 국방부장관인 병조판서의 직책에 근무할 때

중국과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십만양병론'을 주창하였으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격몽요결'이 있으며 그 외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견득사의  '見得思議'

이득을 보건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

오죽헌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갑니다.

같이 있는 강릉시립박물관은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휴관중이나 확 트이니 정원같은 공간인 오죽헌은

365일 열려 있답니다.

오죽헌의 유래부터 알아보면서....


강릉 오죽헌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오죽헌은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집이었다합니다.

이 집을 둘째 사위 이사온에게 - 이사온은 외동딸 용인 이씨에게 물려주었고,

용인 이씨는 서울사람과 결혼을 하였지만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렀는데 그 때 사임당을 낳았다 합니다.

오죽헌으로 가는 길


사임당은 서울 사람 이원수와 혼인을 하였으나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 용인 이씨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가

율곡선생을 낳았다합니다.


오죽헌 입구에 하얀 목련이 만개한 봄 날 입니다.

신사임당의 친정어머니이며 율곡선생의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로부터

상속받은 집 주이에 검은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었는데

그거이 집 이름이 되었답니다.


현재 오죽헌 내에의 건물은

오죽헌, 문성사, 어제각, 율곡기념관과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바깥 쪽에 강릉시립박물관이 있습니다.

오죽헌 내로 들어갑니다.


오죽헌 보물 돌팻말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빨간 명자나무가 환하게 웃으며 객을 맞이합니다.

아주 선명한 붉은 빛이 너무 아름답군요.

장미과 꽃으로 우리나라에서 쉽게 보는 관상수이며

가지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붉은 꽃은 4월에 피기 시작하며 꽃색은 여러가지 색이 있다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 분포한는 명자나무 입니다.

입구에 봄꽃의 화사한 인사를 받으며 오죽헌 경내로 들어갑니다.


오죽헌 경내로 들어서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문성사 입니다.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사당으로 원래는 이 자리에 어제각이 있었으나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 합니다.


문성사의 문성 文成은 인조대왕이 1624년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 諡號로 그 의미는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합니다.

선생의 정신이 담긴 시호 입니다.


문성사의 왼쪽에는 오죽헌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 몽룡실에서 모친인 신사임당에게서 율곡이이 선생이 탄생을 한 곳입니다.

우측에 있는 온돌방 몽룡실에서 1536년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선생을 나았답니다.

몽룡실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오죽헌의 왼쪽 마루방은 율곡선생이 여섯 살 때
까지 공부를 한 방이랍니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 네 가지는 몸을 닦는 요점이다.

                                                                - 율곡선생 '격몽요결' 중에서


오죽헌의 사랑채

우리 한옥의 사랑채는 주로 남자 주인이 거처하면서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건물이지요.

오죽헌의 사랑채는 온돌방. 툇마루, 대청마루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원래는 안채와 툇마루로 연결이 되어 있던 것을

1975년에 분리하였다 합니다.

3월의 나른한 봄날 오후 햇살이 부셔지는 오죽헌 사랑채에 젊은 대학생들

방문으로 분주한 모습입니다.




오죽헌의 입지문 옆에 아름다운 꽃나무..

매화인줄 알았더니 자두나무 꽃이라고 합니다.




오죽헌을 돌아보고 입지문으로 나옵니다.

입지문은 오죽헌의 남문입니다. 율곡의 저서인 격몽요결의 첫 장인 입지장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격몽요결은 율곡선생의 42세 때 해주 석담에서 저술한 책으로 초학자드에게

학문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유학 입문서랍니다.

격몽요결의 의미는 '몽매함을 물리치는 요긴한 비결' 이라는 .... 

입지장에서는 학문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뜻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답니다.




하얗게 그리고 탐스럽게 핀 자두나무 꽃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죽헌을 나섭니다.


율곡이이 선생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29세에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 섰으며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을 거쳐, 호조와 이조, 병조, 형조판서를 지내며 국정 운영에

참여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천도책,  성학집요,  격몽요결, 학교모범 등이 있습니다.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자란 율곡선생은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를 뵙기 위해 자주 강릉을 다녀갔다합니다.


아내와 함께한 10년 만의 강원도 속초와 양양 그리고 강릉여행 길을 

오죽헌에서 마무리 하고 이제 집으로 갑니다.


잠시 오죽헌 이야기는 

오죽헌과 문성사는 무료로 언제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강릉시립박물관은 입장료가 있습니다. 현재는 코로나 사태로 휴관중입니다. 

설날, 추석, 1월 1일은 휴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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