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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싶나

황제와 국가의 탄생 -- 대한제국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1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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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화의 격랑기인 19세기는 세계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은 조선은 개항을 하고 이후 국외에

사절단을 파견한다. 우리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으로...


대한제국

고종은 1897년 2월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의지를 다지며 경운궁에서 국호를 대한으로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제국을 선포 하였다.


순종황제의 어차
미국의 제너럴모터사 제작 차체에는 황실 문장인 황금 오얏꽃 장식을 하였다.
차체는 목재이고 외부 도장은 칠로 되었다 한다. 



고종황제 어새와 함


대한제국주의를 선포한 고종은 근대자주국가를 건설하고자 전통적인 권위를 바탕으로

근대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신문물을 수요하여 자주적이고 부국강병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하였다.



황룡포를 입은 고종황제 어진


고종은 을사늑약에 반대하고, 헤이그 특사 파견 등의 구실로 인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었고 이어서 순종이 즉위하였지만 이미 그 권한은 일제에 의해

큰 의미가 없는 상태였다.



궁궐 내 근대시설 재현 모습


서양문물이 들어 오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이 변모한다.

특히 경복궁의 건충궁에 1887년 최초로 전등이 켜지며 전기시설이 궁궐에 설치되었다.  


궁궐의 침대와 의자가 배치되거나 상들리에와 커튼 박스 등의 시설이 설치되었고

근대 수도 시설이 갖추어진다.


대한제국의 황궁   경운궁 현판


대한제국의 법궁이자 도시 근대화 사업의 중심이었다.

궐내에 서양식 건축물을 지어 근대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으나

고종이 1907년 강제 퇴위 후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궐로 , 이름도 고종의 궁호를 따와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황실의 생활 용품


개항과 함께 들어온 서양 물품들이 대한제국에 들어온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지에서 화려한 무늬의 자기나 화병, 세면기와 서구식 식기들의

용품들이 사용되었다.


대한제국의 훈장


대한제국 황실은 중요한 행사때 황제국의 격식에 맞춘 전통관복을 착용하여

전통을 근본으로 하면서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서양식 복식을 도입한다.


대한제국의 훈장


대한제국은 1900년 훈장조례를 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훈장은 패용한 자의 지위를 드러 냄과 동시에 국가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태극, 매 등을 훈장의 문양으로 채택하였다.


서양식 관복장 - 영친왕 유년기 부장 예복


1895년 을미개혁 때부터 본격적인 서양식 관복을 착용하였다.

무관복부터 시작해서 1900년에는 문관복도 서양식 복식을 채택하였다.


관복은 신분에 따라 문양의 종류와 개수에 차등을 두었다.


대한제국은 한일 강제병합으로  그 역사가 13년에 단절되지만 우리 역사의 근대국가이자

황제국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한제국의

두 황제의 죽음은 각각 3.1운동과 6.10만세 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거국적인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대한- 大韓

상이 이르기를, "....지금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 韓 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 고종실록 제 36권  .   고종 34년 (1897년) 10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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