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武寧王왕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百濟本記'에 의하면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 혹은 용이니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오,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공주의 멋 - 무령왕릉 이야기
오늘 하지에 전하는 이야기는 무령왕릉에 대한
이야기를 공주의 멋으로 전합니다.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전시관 입구에
무령왕에 대한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무덤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입니다. 묘지석 2매의 기록에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 기록되어 있답니다.
무령왕과 왕비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돕고 무덤을 지키던
진묘수가 있었으며 1971년 7월 무령왕릉의 입구가 열리면서
그 순간 무려 1,446년에 걸쳐 묘를 수호했던 진묘수가 그
임무를 다 했다 하지요. 디지털로 구성한 왕과 왕비의 관입니다.
무령왕릉에서는 왕과 왕비의 관을 비롯하여 금귀걸이와 목걸이 등
많은 장신구와 당시의 생활용품들이 발굴되었답니다.
왕릉 발굴 시 유물의 위치가 표시된 그림입니다.
왕과 왕비의 관입니다.
왕의 관은 목관 마구리 장식을 하였고, 일본열도에서 자생하는
금송으로 만들어지고 내외부는 옻칠을 하였답니다.
무령왕과 왕비의 껴묻거리
왕의 권위를 상징하거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것을 기원하는
껴묻거리를 넣었답니다.
발굴유품 중 관꾸미개 모습입니다.
왕과 왕비의 껴묻거리 중 배개와 발받침, 관꾸미개, 귀걸이와
목걸이 같은 장신구, 금동신발 등은
공통적으로 보이는 권위의 상징물이라 합니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관꾸미개는 금판을 오려 만든 꽃으로 '삼국사기 - 백제기본'의
'왕은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쓴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꾸미개와 일치한답니다.
무령왕릉에서는 오수전과 묘지석도 발굴이 되었답니다.
왕의 묘지석입니다. 묘지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기록이지요.
'백제 사마왕께서 나이가 62세 디는 계묘년(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셨다.'라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왕비의 묘지석에는
'병오년(526년) 11월 백제국왕태비가 천명대로 살다 돌아가셨다.
서쪽의 땅에서(빈전을 설치하여) 삼 년 상을 지내고 기유년(529년)
2월 12일에 다시 대묘로 옮기어 장사 지내며 기록하기를 다음과
같이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과 왕비의 묘지석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출토 부장품 중 용/봉황무늬 고리자루 큰 칼은 왕 허리 왼쪽에서 출토되었답니다.
자루 끝 고리에는 2마리의 용이 서로 교차하여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용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답니다.
왕의 허리띠고리와 허리띠 꾸미개의 모습입니다.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전시실에는 공주의 풀꽃시인
나태주 시인의 무령왕릉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한 구절을 인용하며 공주의 멋 무령왕릉이야기 다음이야기로
기약하며 마무리합니다.
'보소서 보옵소서 우리들 하루하루
소금 바다 괴론 인생 굽어살펴 주시옵고
그날의 화평과 사랑 오늘에도 주옵소서.'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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