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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멋과 맛

남도 가볼만한 곳 -- 전주와 경기전 이야기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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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전주 나들이..

오목대 돌아보고 한옥마을 스치고 

요즘 상황은 썩 좋지 않아 거리는 한산하고...

경기전 돌아보기 전에 여기 저기 기웃기웃...

전주 이야기를 찾아보고 

 

경기전 어진박물관의 전시관에서

 

경기전 안쪽에 조선왕들의 초상화가 있는 어진전이 있고

경기전에 관한 전시관이 있습니다.

어떤 역사의 향기가 담겨 있나 돌아봅니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고향,

경기전과 조경묘, 조경단 그리고 오목대와 이목대 등 많은 왕실유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전주의 경기전 연표..

조선왕조 건국 후 이를 기념해 전주에 경기전을 건립하고

태조 어진을 봉안하고 

그래서 경기전 이름의 의미는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고 합니다.

조선 건국 후 태조어진은 한양, 고구려수도 평양, 신라수도 경주, 고려의 수도 개성, 태조의 출생지 영흥

그리고 태조의 본향 전주의 6곳에 봉안하였답니다.

 

 

1410년 태종10년에 전주에 태조 어진을 봉안하였는데,

이는 경주 집경전의 태조어진을 모사한 어진이랍니다.

현재 태조어진은 고종9년인 1872년에 모사한 것이며

조선초의 태조어진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그림을 물에 씻어내고

백자항아리에 넣어 경기전 북상계에 묻었답니다.

 

 

 

부용향을 넣은 주머니 향낭입니다.

병충해방지와 습기와 냄새를 제거하는 기능으로 어진이 봉안된

진전 침실어 두었답니다.

 

용두, 어진받침대와 같이 사용된 장식입니다.

 

 

원통형 소나무를 길이방향으로 반분한 후 그 속을 파내고

이것을 다시 맞대어 대나무통 모양으로 만든 '흑장통'입니다.

비상시 어진을 긴급히 대피하기 위해 만든 원형통입니다.

 

 

영정모사도감의궤 입니다.

1901년 태조를 비롯한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등 7분의 조선왕의 

모사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위봉사기실 현판입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 점령하여 경기전 태조어진과 조경묘의 위판을 위봉산성으로

이안하였을 때 위봉사 경산 스님이 법당에 모시고 지켰으며,

영정을 모시고 온 관리들 식사까지 맡아 노고가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후에 전라감사가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으나 어수선한 틈에 흐지부지 되었고,

이에 김성규라는 사람이

'세상에 상을 주려다 마는 법이 어디 있느냐,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보았다.

고금천하에 공 있는 자가 누락 되어 묻혀버리는 일이 허다하니 몇 마디 

적어 절간 벽에 걸어둔다'라는 내용의 현판을 써서 위봉사에 걸어 두었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남의 공을 가로 채는 그런 사람들이 있음은 같은것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전주사고 이야기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총25대 472년간의 역사기록입니다.

국보제151호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439년 전주사고가 설치되었고 1473년 경기전 동편에 실록각을 건립하고

실록을 비롯한 국가 중요서적을 보관하기 시작하였답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었고 - 조선전기 4대사고인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의 실록은 소실 - 임진왜란 후 

전주사고 실록을 저본으로 다시 실록을 출판하여 조선후기 5대사고인

춘추관, 오대산사고, 정족산사고, 태백산사고, 적상산사고에 봉안하였답니다.

전주사고본 실록은 임진왜란 후 강화도 정족산에 보관하였으며,

현재는 서울대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전주 이목대비 탁본

이목대는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 살았던 곳입니다.

이름 기념해 '목조대왕거유지'라는 고종 친필의 비를 1900년에 세웠답니다.  

 

오목대비탁본

오목대는 태조이성계가 고려장군때 남원에서 황산대첩을 거두고 귀경길에 

전주에 들러 일가친지를 모아 잔치늘 벌이고 '대풍가'를 읊었다는 곳이며,

이를 기념해 '태조고황제주필요지'라는 고종 친필비를 1900년에 세웠답니다.

 

 

이규찬을 조경묘 시위유사로 임명하는 첩.

조경묘는 전주 이씨 시조 이한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며

이규찬은 왕실의 후예입니다.

시위유사는 조경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조경묘 참봉 임명장으로 류관현을 조경묘 참봉에 임명한다는 칙명입니다.

 

 

경기전 제례는 대향 , 작헌례,  분향례 의 제례가 있었습니다.

 

 

 

대향은 6대 제향으로

대제는 1년에 6번  -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 에 거행 되었습니다.

술을 세 번 부어 올리는 삼헌 및 음복례까지 모든 제례 절차를 행하였습니다.

1908년 2번으로 줄여 청명과 추석에 지냈으며,

광복후 한번으로 줄여 동지에 지냈답니다.

1978년부터는 음력 9월 9일 중양일로 바꾸어 대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작헌례는 어진의 이안, 또는 환안 때 지내는 일종의 고유제 告 由 祭로 대제와 달리

일헌 一 獻에 음복례는 없답니다.

 

 

분향례는 매달 삭망, 초하루와 보름에 지냅니다.

제수의 진설 없이 간단하게 분향 및 봉심을 겸하는 의식입니다.

경기전 제례복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경기전과 조경묘 제례 때 축문을 올려놓은  판인 축문판모습입니다.

 

 

경기전 제례에는 많은 제기가 있습니다.

이 사진은 산뢰라는 제기로 아가상에 올려 놓는 술단지로 산과 구름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외에 향로와 향합, 술잔과 받침, 중계우리와 산자우리 다식우리,

종자우리, 수라기, 면기, 탕기, 병기, 적기 그리고 시접 등의 제기가 있습니다.

 

 

 

경기전 수문장에 임용한 이교의 무과홍패입니다.

홍패란 문과와 무과의 급제품을 말합니다.

 

 

 

경기전 서편 부속건물지에서 출토된 용의 발톱이 5개인 와당과 3개인 와당조각입니다.

이름하여 운용문 암막새입니다.

 

경기전 관리는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령(종5품)1인과 

참봉 1인을 비롯하여 청소관리를 담당하는 수복 210명, 소방업무를 맡은 금화 100명,

수호를 위한 충의군 360명 등으로 편제 되었으니 그 규모가 정말  큰 조직이었습니다.

 

 

 

 

 

자만동금표로 1900년 오목대와 이목대를 성역화 하면서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자만도 일원을 조선왕조가 일어난 성지로 

조성하고 이를 수호하기 위해 나무를 베고, 몰래 묘를 쓰는 것을 금한다는

표지석입니다.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 - 1614년 중건 - 1676년 별전 건립 후

1919년 일제에 의해 경기전 서편 부속건물 철거, 일본인 소학교 건립, 1937년 별전 철거 -

1997년 경기전서편 부속건물자리 중앙초교 이전 - 2004년 부속건물 복원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가을향 살며시 태조로에 내려 앉는 시간에 다녀 온 남도  - 전주 한옥마을안에 있는

경기전의 전시실 이야기를 이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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