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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멋과 맛

백제의 향기 익산 여행 - 국립익산 박물관 미륵사지 사진전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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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문화유산의 도시인 익산에 새로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을 두 번째 다녀 왔습니다.

처음 방문 때는 푸른 기와 "녹유" 기획전이 있었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사진으로 보는 그리고 근 20여년의 해체복원 공사를 한 미륵사지 서탑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백제의 사찰 미륵사지 석탑 130년 전 이야기

 

국립익산박물관 테마전으로 100년전 사진에 담긴 미륵사지 1,300년 이야기 입니다.

 

사진에 담긴 미륵사지 1,300년은 2012년 3월 28일까지 진행됩니다.

 

 

국립익산박물관 테마전 미륵사지 사진전 입구에 붙어 있는 액자에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을 봅니다.

사진 액자에 있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풀어집니다.

 

 

 

백제의 예술혼이 담긴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동탑과 서탑이 있는데 이 탑은 1/3은 무너진 서탑의 모습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조선의 석탑 중에서 이것에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것이 없다" 라고 했답니다.

 

 

시멘트로 무너진 부분이 보수된 모습의 미륵사지 석탑 모습입니다. 이 석탑을 해체 복원을 하였지요.

지금부터 100년 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연구자들은 백제문화유산이 있는 미륵사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선총독부는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등 백제의 고도 익산의 문화재를 조사하고

기록을 사진과 도면으로 남겼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1910년 12월 '조선의 문화유산 실태 파악'을 명목으로 

문화재 조사 사업이라는 일회적 조사를 시행하였답니다. 

사진의 책자는 조선유적조사약보고로 조선총독부 공문서랍니다.

 

 

1910년 촬영된 미륵사 석탑의 모습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익산 일대의 문화재를 조사한 일제는 유적마다 갑, 을, 병, 정 4개 등급을 매겼으며,

미륵사지 석탑은 무너진 모습이지만 '갑'등급을 매겼답니다.

 

 

남쪽과 서쪽의 무너진 모습의 미륵사지 석탑 사진입니다.

조선유적조사약보고 기록에 의하면 '양식으로 판단한다면 약 1,200여 년 전에 건립되어

규모가 장대하고 형태가 지극히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크게 파괴되고 무너져서 간신히 존재하는

6층의 탑신이 위태로워 실로 위험한 상황이다. 수리비가 약 5만원, 응급수리비가 약 2천 원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미륵사지 석탑에 콘크리트 보강 작업을 합니다.

1915년 보수가 되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보수작업에는 콘크리트와 철근을 사용하였으며

불안정한 곳의 아랫부분에는 보수년도를 새긴 사잇돌을 원래 돌에 덧대어 설치하였답니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시 덧댄 사이석에 '대정4년'이라 새겨진 모습입니다.

미륵사지 석탑도 아픈 우리의 역사의 파편을 갖고 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 본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입니다. 왼쪽과 뒷쪽에 콘크리트로 보수된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면 왼쪽 아래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미륵사지 석탑의 장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미륵사지를 품고 있는 미륵산과 그 아래 초가집 민가들 그리고 시멘트로 보수된 미륵사지 석탑과 

기울어진 당간 지주의 모습이 보입니다. 1917년 일제의 의해 촬영된 사진입니다.

 

 

청사진의 상부에는 '전북 익산군 미륵탑실측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5년 4월 17일에 조선총독부 토목국장이 내무부장관에게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실측 도면을 

보낸 문서랍니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보수공사를 한 미륵사지 석탑...해체 될 때 나온 콘크리트 부재와 'H' 모양의 강철기둥입니다.

1917년 기록에는 석탑 남서면이 붕괴한 것을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굳혔다는 기록되어 있답니다.

 

 

미륵사지에는 동과 서에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기울어진 서당간지주와 상투를 튼 조선인의 모습입니다. 1917년 사진입니다.

 

 

1910년 촬영된 일본인과 서당간지주의 모습입니다.

1917년 고적조사에 나온 당간지주이야기는 '한 쌍으로 동서 마주보고 있으며 같은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서쪽 지주는 논 가운데 있으며 기울어있고, 동쪽 지주는 기단이 매몰되었지만 

바르게 서있다. 당간지주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말미암아 절이 바라보는 방향도 확실해 졌다.

수법이 우아하여 당대의 대표작이라 인정받을 만한 유물이다.'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일제는 미륵사지를 자신들의 식민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기반으로 자기들의 문명성과 대비되는

조선의 모습에 대한 야만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선전도구로 사용하였답니다.

 

일본이 들이 기록한 미륵사지 석탑이야기는

'한 쌍의 당간지주 사이를 지나 북쪽으로 나아가면 서쪽에 치우쳐 있는 대형탑이다. 목탑 모양을 본떠 

화강석으로 제작하였다. 현재 1층은 완전히 남아있고, 2층부터 5층까지는 2/3가 남아있다.

6층에 이르면 간신히 그 일부만 남아 있으며, 그 위는 알 수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석탑의 그림자가 드리운 미륵사지 금당지의 모습과 미륵산 아래 1900년대 초기의 초가집 모습이 보입니다.

 

1934년 이후에 촬영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입니다.

보호를 위한 울타리도 설치되어 있고 무너진 부분을 최대한 가려진 상태로 촬여된 사진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시기에는 수풀이 무성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울타리에 둘러싸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은 미륵산 중턱에서 바라 본 미륵사지의 모습입니다. 멀리 논 가운데 석탑의 모습이 보이고...

사진 저 멀리로 당시에 익산군이 있었답니다.

 

 

3월 28일까지 계속되는 미륵사지 사진전은 100년 전 촬영된 사진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1,300년 전

미륵사의 모습을 생각하는 기회로 만들고자 하였답니다.

 사진 속에는 위태로운 모습의 미륵사지 석탑, 논밭으로 변해버린 절터와 콘크리트로 보수된 석탑,

군데군데 초석이 비어있는 금당지의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사진전

100년 전 기록을 담은 흑백사진 속에는 미륵사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를 살펴볼 수 있는 많은 정보가

담겨진 의미가 있답니다.

1,3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미륵사지 석탑과 130년전 일제강점기 때 촬영되고 기록된 자료를 만나 본

국립익산박물관의 여행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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