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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블단 팸투어

무안 힐리여행 --- 다성 초의선사 생가지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17.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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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대종사는 1786년 (정조 10년)에

무안군 상향읍 왕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열 다섯 살에 나주 운흥사에서 벽봉 민성스님께 의지해

출가하였다.

생애에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55세 때에는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선사라는 칭호를 받았다.


무안에서 다성 초의선사를 만나다

 오늘은 무안에 있는 우리나라 차에 대한 깊은 사상을 갖고 있었던

초의선사 생가지와 선사의 삶을 돌아본다.


초의선사 기념관 및 생가가 있는 입구


생가지에는 야생차밭이 있다.

초의 선사는 그의 다론(茶論)에서 茶차는 묘한 근원을 갖고 있으며 그 근원에

집착하지 않으면 바라밀의경지에 이른다 하였다.  

초의선사 상

초의선사는 법랍 65세인 고종 3년에 나이 81세로 입적하였다.


초의선사 상을 맞이한 연못 초의지艸衣池

초의선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연못이다.

탄생 217주년의 해에 조성했다.

중앙에는 석가산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었고, 지금은

푸른 연잎과 붉은 연꽃이 연못에 하나가득이다.

일지암 一枝庵

초의선사가 평생 수행하다가 열반한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을 이 곳에 복원하였다.

일지암 다실에서는 차를 대접하고, 좌우산방에는 평상시 기거하는 공간이자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라 한다.

일지암 옆에는 초의암이 있다.

15세까지 이곳에 살던 선사가 어린시절 놀이터 삼아 놀던 바위다.



제 13대 초의대종사비


해남 대흥사는 조선시대에 13대 대종사와 13대 대강사를 배출한

남도의 중심 사찰이었다.

초의선사는 13대 대종사였다.

대종사 1대는 그 유명한 서산대사다.





다성사 내의 초의선사 동상.

이 사당 안에는 제자인 소치 허련이 선사가 열반하기 한 해 전인 80세 때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렸고 그 영정을 그대로 청동으로 재현하였다.



다성사

다성 초의선사의 사당이다. 매년 음력 4월 5일 선사의 탄생일에 헌다제를 지내며

열반한 8월 초이틀에도 헌다제를 지낸다.

이 곳에는 평상시에도 추모객이 헌다를 하고 예를 올릴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금오초당 (金鰲草堂)

조선 초 뛰어난 시인, 문장가인 매월당 김시습의 다실을 고증을 통해

복원한 건물이다.

김시습은 전국을 유랑하다가 경주 남산인 금오산에 작은 초당을 지어

금오초당이라 이름하고 은거하였으며

이 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당시의 금오초당에는 땅바닥을 파고 차를 달일수 있는

'땅화로'가 있었다 한다.

땅화로 문화는 당시에 김시습과 교류한 일본인 승려 준장로에 의해

일본에 전해져 다도 문화로 자리잡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땅화로"문화가 되었다.

용호백로정

서울 용산에 있었다는 추사 김정희의 정자 '용호백로정'을 이곳에 복원하였다.

용호는 용산의 옛 명칭이고, 백로정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서 백로가 노니는 모습을

본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한다.

초의선사는 이 곳에서 두 해나 머물며 동갑나기 김정희와 시를 짓고, 청담(淸談)을 나누었다고 한다.

초의선사 생가

당시를 상상을 하여 지은 생가다.

선사의 생가지는 승달산에서 유달산으로 뻗어가는 중간 지점의 왕산 자락에 있다.

복원된 생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초가삼간이다.

초의선사는 다문화 뿐 아니라 시, 서, 화에 걸쳐 예능을 보였던 예술인 이었다.

많은 저서가 초의 선사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상기 포스팅은 제21회 무안연꽃축제 홍보문화 관광 맛집을 알리기 위하여 전남 무안군청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 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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