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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멋과 맛

<청주> 임진왜란의 충렬공 송상현선생 충렬사

by 하늘하늘하늘하늘 2016.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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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지킨 충절과 진정한 충성

충렬공 천곡 송상현은 임진왜란을 앞두고 동래부사로 부임하였고,

왜란이 발생하여 왜적이 부산 진성을 함락하고 동래성으로 쳐들어 올 때

경상좌병사 이각은 적이 강함에 겁을 먹고 도주했으나 공은 목숨을 바쳐

지킬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청주 충렬공 송상현공 충렬사


1952년 4월 15일 42세의 나이로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렬공 송상현


충렬공 송상현 공을 제를 지내는 충렬사



충렬사 입구에 "천곡 기념관"에는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공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요


군신의중 부자은경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해도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큰 불효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충을 위해 효는 가볍다' 한 것은 부모에 대한 효의 정신도 중요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의 정신은 더 강한 것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진정한 효이다는 

선생의 정신인 진정한 효 인 것이다.  


1952년 4월 15일 왜적이 성을 둘러싸고 '싸울테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비켜라' 하고

동래성 앞에서 지껄이자, 충렬공의 한마디는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킬 수는 없다'라고

응답한 후 중과부적이 상황에서 왜적과 싸움에 임하였다.


그러나 성은 곧 함락되고 이 때 공을 평소에 흠모하던 왜장이 피신을 권했으나

고성월운 열진고침 군신의중 부자은경

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

이런 글귀를 남기고 왜적에 의해 순국 합니다.

외로운 성에 달무리 지고   여러 진들은 단잠에 빠져 있네. 

군신의 의가 중하니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


혈선도. 피로 글씨를 쓴 부채

위의 한문을 임진년 4월에 쓴 부채 입니다.


충렬공 송상현공의 제를 올리는 충렬사 입구


여산 송씨 가문에서 제를 올리는 제각 모습



청주시에서 제례 행사를 올리는 제각


9월 10일 아들만나서 식사 후

청주에서 국도로 나와 고속도로를 올라 타기 전에

네비가 안내하는 길로 달리다 보니 충렬공 송상현선생 충열사라는

안내 표지를 보고 찾아간 충렬사 입니다.

임진왜란시 중과부적의 열세에서 죽음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의로운 신하이자 효성지극한 충정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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